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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의 행간에서 대구를 읽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calendar_today2026-09-02 visibility28

‘죄송합니다. 이번 채용에서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휴대전화에 뜬 문자를 한 청년이 말없이 오래 들여다본다. 몇 번째 불합격인지 세는 것도 그만둔 지 오래다. 자기소개서 문장은 고칠수록 매끄러워지는데, 정작 자신은 점점 더 까칠해지는 것만 같다. “요즘 어떻게 돼 가니”라는 부모의 조심스러운 물음 안에 담긴 사랑을 알기에 마음은 더 아린다. 진로 앞에 선 청년들, 인생 후반전을 다시 설계하려는 중년들과 마주 앉으며, 나는 지난 몇 해 동안 이런 얼굴을 자주 만났다. 성실하고 재능 있는데도 스스로를 ‘아직 멀었다’고 다그치는 청년들이 많다. 열심히 살수록 오히려 더 초라해지는 역설 앞에서, 그들은 자주 지쳐 보인다.

나는 그런 청년들에게 나태주 시인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건네고 싶다. 책은 코로나로 모두가 지쳐 있던 시절, 시인이 날마다 눌러쓴 위로의 시들을 묶은 시집이다. 표제작에서 시인은 독자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인다. 오늘 할 만큼 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서툴고 부족한 자리는 내일 고쳐 가면 그만이며, 아무리 작은 걸음도 분명한 나아감이니 그 작음을 트집 잡아 스스로를 몰아세우지는 말라고 다독인다.

이 말은 게으름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더 멀리 가기 위한 지혜에 가깝다. 심리학에서는 완벽주의가 성취의 동력이기보다 소진의 원인이 될 때가 많다고 말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다그치는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크게 무너지지만, 서툰 자신을 너그럽게 품을 줄 아는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여유를 지닌다. “애쓰지 말라”는 말은 서툰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고, 아껴 가며 오래 애쓰라는 말일 것이다.

사실 이 조바심은 청년만의 것이 아니다. 승진에서 밀릴까 조바심 내는 중년도, 은퇴 후 쓸모를 잃을까 두려운 사람도 모두 저마다의 시험대 앞에 서 있다. 게다가 대구·경북지역 청년에게는 ‘수도권으로 떠나야 인정받는다’는 보이지 않는 잣대까지 얹힌다. 그러니 여기 남아 제자리를 지키는 일은, 세대를 막론하고 그 자체로 이미 만만치 않은 애씀이다. 그 애씀을 우리는 너무 자주 당연하게 여겨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애쓰는 마음의 방향을, 밖이 아니라 안으로 살며시 돌려보자고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남들이 정해 놓은 좋은 스펙을 향해 달리기 전에,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마음이 뛰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면 좋겠다. 그렇다고 빈틈없는 설계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진로심리학자 존 크럼볼츠는 이를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이라 불렀다. 한 사람의 진로는 치밀한 계획보다, 예기치 못한 기회를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붙잡는 데서 열린다는 것이다. 자기다움이라는 단단한 중심 위에서 세상을 향해 열려 있을 때, 일도 삶도 비로소 오래 지탱된다.

“이렇게까지 애쓰는데 왜 길이 보이지 않느냐”고 청년들은 내게 자주 묻는다. 그럴 때 나는 답 대신, 먼저 그 길을 걸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지금은 제 몫을 단단히 해내는 이들도 한때는 수없이 흔들리고 미끄러졌지만, 그 서툰 시절의 자신을 끝내 미워하지는 않았다. 돌아보니 그 더딘 걸음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더라는 말을, 앞선 세대는 뒤따르는 세대에게 건넬 수 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중년 이후를 ‘생성감(generativity)’의 시기라 보았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되찾는 단계라는 뜻이니, 앞선 세대가 청년에게 내미는 손은 시혜가 아니라 스스로를 완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세대와 세대가 그렇게 서로의 경험을 나눌 때, 조급함은 조금씩 옅어진다. 그러니 오늘도 애쓰고 있는 청년에게, 그리고 각자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인의 마음을 빌려 이렇게 전하고 싶다.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 서툰 오늘조차 실은 한 뼘씩 자라는 중이다. 애쓰는 사람의 하루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이미 그 자체로 값지다.

먼 훗날 돌아보면, 지금의 이 서툰 애씀이야말로 한 사람의 뿌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삶이란 정답을 맞히는 시험이 아니라, 나를 알아 가고 그 위에 일을 지어 나답게 세워 가는 긴 설계이기 때문이다.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끝내 자신을 놓지 않아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도시의 미래도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오늘 제 몫을 조용히 감당한 수많은 ‘충분한’ 사람들 위에서 자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은, 그리고 이 도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마다의 속도로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