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를 기르는 도시에서, 머무는 도시로
잘 기른 청년일수록 왜 멀리 떠나보내게 될까. 대구를 떠올릴 때마다 이 물음이 마음에 남는다. 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Enrico Moretti)는 『직업의 지리학(The New Geography of Jobs)』에서 그 실마리를 건넨다. 한 도시의 운명은 공장이나 자원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그곳에 모이느냐에 따라 갈린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 특히 지역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는 일자리는 아무 데나 흩어지지 않고 특정 도시로 모여든다. 그리고 재능은 재능이 머무는 곳으로 다시 흘러든다. 혁신적인 일자리 하나가 생기면 그 곁에 다섯 개 안팎의 다른 일자리가 함께 따라온다고, 그는 짚는다. 도시의 번영은 건물 한 채가 아니라, 그렇게 모여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란다.
이 이야기를 대구 위에 겹쳐 읽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흔히 대구를 두고 인재가 떠나는 도시라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대구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정성껏 길러내는 도시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학원가에서, 자식 교육이라면 무엇이든 감수하는 부모의 마음속에서, 대구는 아이들을 살뜰히 길러 왔다. 그렇게 자란 청년들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다만, 그 청년들이 이제 재능이 모이는 곳을 따라 하나둘 이 도시를 떠난다.
그러니 대구의 물음은 이렇게 옮겨가야 한다. 어떻게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가 아니라, 길러낸 인재가 왜 머물지 못하는가. 국가데이터처 집계로 올해 1분기에만 대구를 떠난 사람이 1천725명에 이르렀고, 그 가운데 20대가 1천26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이 짐을 꾸린 가장 큰 이유는 해마다 그러하듯 뜻밖에도 특별하지 않은 한 마디, 일자리였다. 물론 숫자 뒤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숨어 있다. 다음 걸음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망설임, 여기 남으면 뒤처질 것 같다는 조바심 같은 것들이다. 떠나는 청년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아도 괜찮은 길, 남는 편이 오히려 나은 길이 이 도시 안에 얼마나 놓여 있는지를 함께 헤아려보고 싶다.
대구는 지금 그 길을 새로 놓는 중이다. 섬유의 도시에서 로봇과 미래모빌리티, 의료와 물산업의 도시로 산업의 옷을 갈아입고 있다. 반가운 전환이다. 그러나 모레티의 이야기가 일러주듯, 산업의 간판을 바꾸는 것만으로 인재가 머물지는 않는다. 인재가 바라보는 것은 일자리 하나가 아니라, 성장의 경로다. 여기서 배우고, 일하고, 실패해도 다시 설 자리가 있는가. 10년 뒤의 나를 이곳에서 그려볼 수 있는가. 그 그림이 또렷해질 때, 사람은 비로소 이 도시에 뿌리를 내린다.
재능이 재능을 부른다는 말을, 나는 조금 다르게 옮겨 읽고 싶다. 한 사람의 재능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곁에서 익어간다는 뜻으로 말이다. 먼저 길을 알려주는 선배, 서툰 후배의 실수를 너그러이 눈감아 주는 동료, 처음 온 사람에게 슬며시 자리를 내어주는 조직, 작은 시작을 진심으로 다독여 주는 이웃. 재능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여문다. 지난 글에서 나는 그런 다정함 속에서 지역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적었다. 그 다정함은 막연한 온기가 아니라, 청년이 이 도시에 깃들게 하는 관계의 그물이다. 앞서 말한 성장의 경로도 실은 이런 관계들이 촘촘히 이어진 길이다.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것은 결국 연봉의 숫자가 아니라, 나를 알아봐 주고 다음 걸음까지 이어 주는 눈길이기 때문이다.
DGIST와 경북대를 비롯한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은 그 자체로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자산은 쌓아두기만 해서는 힘을 내지 못한다. 서로 손을 맞잡아 이어줄 때 비로소 살아난다. 학교에서 길러진 재능이 지역 기업으로 가닿고, 기업이 쌓은 경험이 다시 다음 세대의 배움으로 흘러드는 순환이 있어야 한다. 모레티가 말한 ‘모임’도 결국 이런 다정한 순환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 흐름이 끊기지 않을 때, 대구는 인재를 길러 떠나보내는 도시가 아니라 인재가 자라고 머무는 도시가 된다.
책장을 덮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다. 도시의 미래도 다르지 않다. 대구의 내일을 다시 읽는 일은, 이 도시에 남기로 한 사람과 남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다시 읽는 일이다. 그 마음을 먼저 알아보고, 그 곁에 가만히 길을 놓아 주는 일. 그것이 인재의 도시가 시작되는 자리다. 다만, 사람은 혼자서 그 길을 오래 걷지 못한다. 다음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연결과 공동체의 이야기로 이어가려 한다.